인간의 적응능력의 양면성을 보다.
한달 전, 정신없이 썸머스쿨 졸업식을 준비하던 때에
한 아이의 실수로 그만 2년을 넘게 잘 써오던 아이폰이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고,
액정이 보기좋게 파편채 흩날렸다.
다행히 화면 보호 필름덕에 조심히 연명해오다
2주 전, 화장실 변기에 보기좋게 빠트려 그렇게 최후를 맞이하게 했고
난 세미원시인-여전히 랩탑이나 여러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으로 접어든지 2주가 지나고 있다.
전화가 없으니 불편할 것이라는 여러 사람들의 예상은 빗나가고
아직까지도 별 어려움이나 불편함 없이 이리도 잘 지내고 있다.
물론 고의적으로 전화 혹은 메시지를 받지 않는다는 일방적 오해로 인해 약간 곤란할 때도 있지만
그러한 문제들을 제외하고선 인간의 적응 능력과 처세술의 탁월함에 다시금 놀라고 있다.
물론 편안했고, 의지했던 흔적들로 가끔씩 당황될때가 있지만
인간의 적응 능력은 이럴 때 빛을 발하는 것을 또 한번 보게 된다.
이렇게 긍정적인 면이 있는 반면,
사람들은 고장난 것에 대해 조금씩 적응해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고장난 것에 대해 의식마저도 차츰 흐려져 가는 경우 또한 염두하지 않을 수 없다.
고장난 것에 익숙해져가는 인간의 적응 능력을 말하고 싶은거다.
처음엔 안타깝다가도, 조금씩 불편함으로 변하다 나중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는 태도다.
사실 물리적인 문제보다 내면적이거나 관계적인 부분에서 오는 문제가 크다.
나의 내면에 고장난 것이 어디 한 둘이겠으며, 그로인해 불거져나오는 관계적 어려움 또한
그저 불편함으로 방치하다 그냥 그렇게 익숙해져간다는 것이 사뭇 새롭게 두드러져 인식된다.
고장난 채로, 부서진 채로 고아원에 아이 맡기듯 그냥 그렇게 시간에 맡기는 무책임한 행동들은
결국 자신이 버려진 것에 대해 복수심으로 불타는 아이처럼, 언제 폭발할지도 모를 폭탄을 껴안고 있는 셈이 된다.
요즘 나는 잃어버림으로 되찾는 훈련을 하는 중이다.
비록 전화기를 잃어버렸지만 나는 그 전화기로 인해 잃어버린 시간, 관계 등을 다시금 되찾고 있다.
인생의 소모품과 같은 것으로 인해 인생의 가치를 얼마나 잃어버리고 살았던가 싶다.
물론 조만간 새로운 기계를 업어 오겠지만 한달 남짓 자유롭게 보내는 이 시기가 중요하고, 필요했음이 분명하다.